마음이 편한곳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산 그리고 바다 2020. 7. 16. 14:12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


불행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란 책임질 사람을 찾게 미련이다.
책임질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아니하면 선량한 백성은 가슴을 통곡하며
"내 팔자야, 내 팔자야"한다. 팔자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팔자타령밖에는 할 것이 없다. 특히 한국사람이 그렇다.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것도 잘못이지만 하늘을 원망하며 팔자소관으로

체념하는 것도 큰 잘못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따져볼 의욕도 없고 기력도 없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천재지변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막힌 것을 뚫고
따질 것은 따지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따지는 일을 어째서 우리는 부도덕하게 여기는 것일까?
경우만 찾는다느니 매우 까다롭다느니 하면서 일을 반듯하게 하려고 애쓰는
똑똑한 사람을 덕이 없는 인간으로 따돌리는 사회풍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똑똑한 사람이 구박 받고 무능한 무골호인이 인기가 좋은 거 같다.
"모가 나지 않는다"느니, "둥글둥글 하다"느니 하는 표현이 사람의 성품을 놓고
칭찬이 되는 사회라면 발전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따지지 않는 것인지 따지지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잘 따지던 사람들은 대개 불행하게 되고 말았다.
"이거 어쩨서 그렇습니까?" 하고 따지고 들면 상대방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고, 아니꼽다느니, 건방지다느니 하면서
감정적으로 대하니 피차에 아무런 유익도 없이 끝나고 만다.


평생 유배지를 전전하면서 불운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선비들의 대부분은
따질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따지고 들었던 그들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임금께 직언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소문이라는 것을 올렸다.
그것이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었을까?


이런 면에서는 오늘도 결코 새 시대가 아니다. 사람의 생각이 새로와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한 시대가 새로와질 수가 있겠는가? 낡은 것을 새로운 것처럼 꾸면 놓고
"보라. 새로운 것이다" 하며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이것도 "역사상 처음"이고, 저것도 "역사상 처음"이라고 아무리 야단법석을 해도 물정을
아는 사람은 혼자 앉아서 코웃음을 치고 있다. "유치원 아이도 아니면서 저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생각부터 바로잡아야 된다는 말이다. 지도층의 사람들로부터
생각을 뜯어 고치지 않고는 안될 일이란 말이다.


크나 작으나 한 사회가 올바르게 굴러가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우선 듣는 사람이 그 말을 믿어 주어야 일이 제대로 될 것이다.


남이 믿지도 않는 말을 하는 사람도 우습지만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하고
듣고 않았는 그 사람도 우습다. 피차에 시간만 낭비하고 마는 것이다.
말을 하는 놈은, "잘 속더라"하면서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듣는 놈은
속으로, "내가 속을 줄 알아?" 하고 있으니 피장파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자신부터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행동하는 당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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