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
반드시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왜 사느냐?"는
물음을 자신에게 수 없이 던지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왜?"하는 물음이 없었던들 우리가 다른 짐승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왜?"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기에 사람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일에 아이작 뉴우톤이 사과나무가 나뭇가지에서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왜" 하고 묻지 않았다면 과학이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었었을까요?
돈을 벌려는 한 가지 뜻만을 가슴에 품고 악착같이 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욕심을 나무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야망
이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자식들 때문에 산다는 사람들도 꾀 많습니다. 오늘에 살아 있는 우리들의
태반이 이런 부모들이 있어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부모의 그런 책임이 없었다면 우리는 버려진 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인류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베드로 성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사는 사는 것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남의 자유를 지켜
주려고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는 삶은 더 고상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로 간
예수는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삶을 살고 간 사람입니다.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매인 자를 풀어 주려고 그는 괴로운 삶을 외롭게
살고 간 것입니다. 그처럼 자유를 위해 힘차게 살 수만 있다면 아픔도
외로움도 두려워할 것은 못됩니다. 끝에 가서 이기는 것만 확실하다면
죽음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자유를 거치지 않고서는 참된 평등을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폭력으로
이루어진 평등은 늘 불안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변의 환경이 변할 때마다
그 평등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의 평등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타고난 권리가 짓발히는 것을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거나
그것을 바로 잡아 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참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거짓 인생입니다. 산 송장이 별것이 아닙니다.
정의감이 없는 사람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몸은 살았어도 정신이 죽었으면 송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