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 찾아 떠나는 여행 ♥
차마 이별하기에 그 길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가.
그 길은 너무 밝지 않았던가. 비 온 뒤라 길이 질척이지 않았던가.
어려운 길이었던가. 내가 먼저 발걸음을 땐 길이었는가.
당신이 그 길 위에 서서 오래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길이었던가.
코끝으로 작약꽃 향이 아스라이 스치고 지나갔던가,
아니 그냥 향수였던가, 아니면 나무 타는 냄새였던가.
정녕 안녕이라고 말한 길이었던가.
한데 왜 나는 그 길 위에 다시 서서 당신을 부르는 걸까.
ㅡ이병률, <끌림>중에서
시인이자 방송작가이기도 한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은,
여행자의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끌림의 순간들과
'떠남'의 흔적에대한 기록입니다.
여행을 떠난 시인은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마주친 청년에게 직업을 묻습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파리를 여행하는 게 직업이라고,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사는 그의 직업이 파리 여행이라니,
틈틈이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에펠탑에 오르고
미술관에 가는 게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청년은 말했습니다. 에펠탑에 오른 횟수가 몇 번인지 모른다고,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서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외친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고….
얼마 후 시인은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서 우연히 그 청년을 다시 만납니다.
분수에 고인 물로 손을 씻는 그에게 시인은 물었습니다.
"여행 중이니?"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살고 있는 중이지, 요즘은 일이 없거든, 하지만 곧 떠날꺼야."
시인은 다시 묻습니다. "어디로"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파리로!"
'철부지', 우리가 흔히 쓰는 이 말은 사시사철 분간하지 못함,
즉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사리분별에 미숙함을 뜻합니다.
꽤나 심각합니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땅에 씨뿌리고 가을이 왔음에도
수확을 할줄 몰라 곡식과 열매를 거두지 못하니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기온이나 바람만으로도 사시사철의 변화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립니다. 히지만 인생의 계절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삶의 계절이 어느 철인지,
이 계절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쉽게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겨을 나무처럼
힘없이 침잠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겨울이 와도 옷을 차려입지 않아
찬 공기에 몸을 내줍니다.
어쩌면 이렇듯 자신의 계절을 찾지 못한 채
평생 철부지로 살이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계절은 순환히지만,
인생의 계절엔 되돌이표가 없으니 말입니다.
내 인생이 지나고 있는 지점을 좀처럼 진단하기 어려울 때,
혹은 아예 놓쳐버렸을 때,
우리는 일상에 쉼표를 찍고 여행을 떠납니다.
나를 느끼고 스스로를 찾을 나만의 여행을
기대하며 짐을 꾸리고 방문을 나섭니다.
그러나 떠나본 사람은 압니다.
여행의 마음을 갖는 순간,
여행은 벌써 시작된 것을,
머나먼 어느 나라를 거치지 않아도
눈은 이미 여행자의 눈이 되어
세상 풍경들로부터 저만치 열려져 있는 것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여행이고,
길은 어디에나 열려 있습니다.
지금 내 앞을 스처간 저 사람과 나는 이별 했고
이 길에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나
어떤 이별을 나누게 될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예측 불가한 여행,
두고 가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조차,
두근거림에 눌려 그저 설레기만 할 때,
여행은 벌써 시작입니다.
이곳에 어제 만난 그 사람이 다시 있을까요?
그 사람을 만난다 한들
나는 '어제의 나' 그대로일까요?
이미 이곳까지 떠나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 인생의 의미,
내 삶의 계절에 가까이 온 셈입니다.
인생의 계절을 잘 감지하여 적절한 여행으로 행복 누리는 당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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